Part 1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베드로전서 4: 7)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요한계시록22: 10, 11)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마지막 때에 대한 주제를 찾아 깊이 진지하게 공부한다면, 그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고 놀랄 것입니다. 사실 마지막 때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과 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인 것 외에는 다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이 주제는 왕국(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던지 흑암의 나라이던지)과 관련된 궁극적인 문제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주제의 진정한 깊이를 가리우려는 방해 때문에 표면적 문제들만 다루어지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원수는 마지막 때와 관련된 진정한 계시들을 가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겨우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는 예수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오심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와 같은 노래들이나 문구들만 남아있고, 그것이 전부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모든 영적인 문제들에 영향을 미칠 이 위대한 주제와 관련된 다이나믹한 상황들과는 확실히 관련이 없습니다.
저는 마지막 때의 문제들과 연관된 다이나믹한 것들을 요약하기 위해 몇 가지 주요한 포인트들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마지막 때와 관련된 실제적인 도전들이 있고 동시에 특히 마지막 때와 관련된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부르심도 있습니다.
구속사의 많은 자원들이 아직 다 풀어지지 않았음을 아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옛 이스라엘(Old Israel)의 이야기들은 새 이스라엘(New Israel)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여호수아에서 일부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여호수아13: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여호수아18:3)
여호수아는 수많은 전쟁을 이끌어 이스라엘을 언약의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 그는 모든 전쟁의 총사령관이었습니다. 모든 전쟁에는 각각의 전투마다 다른 특별한 전략과 계획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백성들을 실제적이고 진실된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하나님의 사람의 주요한 특징들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특징들을 길게 나열하며 제시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한 특징은 놓칠 수도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 중 하나는 그는 하나님의 생각(the mind of God)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배웠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든 걸음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실제적으로 강력한 나라들과 직면해야 했지만 위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징으로 인해 그들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생각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열린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실제로 2단계(보이는 영역과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승리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물질적이고 영적인 영역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한 몇 가지 참고 구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여호수아 10: 12 – 14)
여호수아는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 하루 종일 동안 태양이 머물게 할 수 있었습니다.
태양이 하루 동안 머물게 만든 유익은 무엇일까요?
논리적으로 예상하자면 일을 마무리하고 승리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대답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단지 그것만이 진짜 완전한 목적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뒤에 감추어진 완전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태양이 하루 종일 중천에 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일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하나님이 과시하기 위해서 쇼를 한 건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 뒤에는 무언가 값진 것이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입장이라면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구절과 마주치게 될 때면 잠시 멈추고 그 안에 분명히 계시가 있음을 알아 주님 앞에서 그 계시를 발견하기 위해 여러 날 동안 혹은 수년 동안 기다릴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기다린 만큼 보물들과 그 성경 구절들에 저장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이해하고 받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초대교회 아버지들의 가르침들과 삶에서 배운 것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접근을 통해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들어가서 보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특별한 날의 뒤에 있는 중요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거의 해가 지고 하루가 끝나는 때였습니다. : 적군들도 하루가 저물고 밤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계속 전투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호수아가 일어나 태양을 향해 멈추라고 말하자 태양이 저물지 않고 다시 빛나기 시작했고 양쪽 군대들은 무슨 일이 잃어나고 있는지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군대는 아마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자신들의 편에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고 생각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사건의 실제 의미는 아닙니다.
반면에, 반대쪽 군인들은 매우 당혹해 하며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을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갑자기 날씨가 바뀌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날씨가 바뀐 것은 그들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당혹해 하고 힘을 잃어버린 이유는 그들이 태양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으로 그들은 그들의 적인 이스라엘이 그들의 하나님을 향해 명령하며 멈추어 서게 만든 것을 본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하나님을 향해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그들 적군의 하나님이 그들 자신의 하나님보다 더 강하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그들은 전투에서 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 버린 것입니다.
이외에도 성경의 이 부분에서 발견할 것이 더 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여호수아 10:11)
성경은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으로 더 많은 자들이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군대가 이스라엘과 함께 일하고 있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박은 어디에서 옵니까? 누가 우박은 던졌을까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천사들이 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의 군대들도 그때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의 군대가 여호수아의 리더쉽 아래서 땅에 있는 이스라엘의 군대와 함께 일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하늘의 군대에게 그와 함께 일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리더가 되었던 것입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왔습니다. 여호수아는 그가 누구인지,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물었습니다. 천사는 대답하며 말하기를 하나님의 군대 대장이라고 했습니다. (5장 마지막 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군대대장이 여호수아에게 말하기 위해(영의 언어로) 왔다는 의미입니다. : “우리는 함께 일할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도우라고 나를 보내셨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나를 불러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너의 적군들에게 우박을 던지겠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은 보이는 영역과 보이지 않는 영역, 2 레벨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완전한 기름 부으심이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면 주님의 손이 그와 함께 할 것이며 주님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일할 것입니다.
몇 가지들을 서로 연결하기 위해 주요 포인트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여호수아는 매우 영감있는 방법으로 모든 전투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미 그들의 땅으로 들어가 있을 때에도 어떤 시점에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에게 주어진 것들 취하는 왜 게으르느냐? 많은 땅들이 이미 너희의 것이지만 너희는 아직 그것들을 다 취하지도 소유하지도 않았다. 왜 멈추어 있느냐? 더 이상의 전투는 없고 모든 전투들이 끝났지만 너에게 주어진 것들을 너희는 여전히 취해야 한다.”
우리는 히브리 원어로 “여호수아”는 “예수님”을 의미하며 두 단어는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감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적입니다. 따라서 모든 장들은 만약 우리가 그 안에 있는 예언적 차원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면 우리에게 예언적으로 말합니다.
여기에는 유사점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처럼 예수님도 우리에게 그분이 우리를 위해 모든 싸움을 다 마치셨고 우리는 그 땅에 이미 들어와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땅을 차지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나이가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나는 이제 나이 들어 늙었으나 여전히 내 마음을 기쁘게 하는 전투의 열매들을 보지 못했다. 이 전투들은 내 모든 날들 동안에 치른 것이지만 너희들은 너희에게 주어진 것들을 아직 받아서 취하고 있지 않고 있다.”
예수님과 여호수아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했는데 그러면 예수님도 여호수아 처럼 늙을 수 있다는 의미인가요? 예수님이 늙을 수 있습니까? 물론 예수님은 늙을 수 없지만 예언적 말씀은 여기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사 이후 2000년이 지났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정말 오랜 시간이고 우리는 아직도 완전한 소유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요점은 옛 이스라엘은 땅을 완전히 소유하는 것을 실패했기 때문에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들의 적군들이 그들에게 가시와 엉겅퀴같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 하나님 교회의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마태복음 25장에 언급된 10 처녀의 비유는 모든 처녀들이 잠든 사이에 그 때가 왔음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학자들은 교회가 매우 강력하게 시작했으나 그 이후에 잠이 들었다는데 동의합니다. 이제 교회는 신랑이 오실 것이므로 깨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수세기 동안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혼란과 혼동이 있습니다. ; 여러 다양한 생각과 학파들, 아이디어들, 영적인 조직들과 영적인 활동들이 전세계 교회에 있습니다. 이런 각각의 것들은 무엇이 올바르고 완벽한 길인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방황하며 묻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이자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도 너희는 여전히 내가 너희에게 준 것들의 완전한 소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원수들이 너희를 조롱하고 상처를 주며 하나님의 교회 안에 많은 악한 것들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에 수치를 가져오고 믿는 자들이 걸려 넘어지게 할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많은 믿는 자들이 묻고있는 걸림돌의 질문은 “거룩하고, 승리하는 크리스천의 삶을 지금 이 시대에 사는 것이 가능한가?” 입니다.
믿는 자들은 불평하며 말하기를 크리스천 지도자들의 삶에 나타나는 나쁜 일들과 죄들에 대해 듣다 보면 과연 영적으로 연약하고 어린 자신들이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할까 의문스럽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변명가운데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심장 가까이 나아가 보십시오. 그분은 마음은 많은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영적 여정을 걸으면서 저는 한 사람이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많은 기도와 말씀 가운데 인내로 하나님 앞에서 기다릴 때면 더 많은 빛을 받게 되고 영적으로 격려를 받아서 더욱 더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고 싶은 열망이 생긴다는 것을 배워왔습니다. 이 경우에 이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을 더 이해하기 위해 쫓아 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에 더 가까이 가고 싶은 열망을 쫓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과의 깊은 진실된 교제로 인도를 받는 사람들을 위한 성령님의 실제적 인도하심입니다. 첫 예로, 우리는 주님의 마음 가까이로 인도받은 사람은 사랑과 평화로 채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참으로 일어나야 하는 일이지만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주님의 마음은 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그분의 마음 가까이 가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처음 대면하게 되는 것은 그분의 고통입니다. 주님은 여전히 그분의 마음 가까이 가기를 소망하며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된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완전히 소유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구속 사역의 영적인 소유들을 받기 시작할 때 모든 것들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열려서 원수의 숨은 계획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수는 열린 눈으로부터 그런 계획들을 감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영적인 소유물들을 받고 있지 못하면, 지금 서있는 영적인 수준에서는 원수의 숨은 계략을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사단이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는 믿는 자들의 은혜의 분량을 볼 수 있는 능력 때문입니다. 원수는 믿는 자들이 가지고 있는 은혜의 분량의 수준까지만 볼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원수는 그 정도의 레벨에 따라 자신의 계략을 숨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믿는 자가 영 안에서 보려고 노력해도 열린 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생각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왔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문제들에 대한 많은 설교와 가르침들을 받아왔기 때문에 영적인 시야의 결여를 우리가 알고 있는 해석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충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원수의 계략은 이러 이러해.” 이런 해석은 생각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직접적인 영적 시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영적인 소유를 받게 된다면 우리의 영적인 열린 눈은 더 높은 분량의 은혜를 받게 될 것이고 그런 높은 단계에서는 원수가 계략들을 감출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그 사람은 원수의 모든 계략들을 노출할 수 있습니다.
두 군대가 전쟁 중인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한쪽 군대는 상태편의 모든 전투 전략을 다 알고 있습니다. 결과가 어떨까요? 당연히 상대의 전략은 알고 있는 쪽이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야 합니다. 만약 지금의 영적인 상태를 평가한다면, 하나님의 교회가 완전한 승리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학적으로 말고 실제적으로 말입니다. 사단의 군대가 실질적으로 완전히 패배하고 있습니까? 현재 상황이 이와 같습니까? 진실은 교회가 사단의 세력과 싸우고 있지만 때로는 패배하고 때로는 승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여호수아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너희의 소유물들을 취하지 않느냐? 2000년이나 지났는데도 너희는 게으르고 여전히 내가 너희에게 허락한 모든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 들어가려 하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결정은 무엇일까요?
때때로 우리는 결정이 요구되고 필요하다는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모든 모임들 가운데 나타나는 그리스도 몸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모임들에 참석하고 가르침을 받고 즐거워하며 주신 메시지에 대해 하나님께 짧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이런 저런 것들을 할 것을 약속하지만 결정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결정을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무슨 일이 일어 나고 있는지 보고 이해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그렇게 하므로 그분의 생각과 마음에 더 가까이 갈수 있습니다.
가르침을 들을 때마다 감동을 받고 기도하며 몇 발자국을 떼는 것은 축복이며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돕지만 우리는 결정을 내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내려야 할 결정은 단순히 우리에게 허락된 소유를 받아서 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이며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소유” 가 핵심단어 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내려야 할 결정은 움직여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영적인 소유물 안으로 들어가는지를 찾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눈이 열리고 원수의 전략을 보게 되어 그것에 대항하여 걸을 수 있게 되고 또한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의 생각을 아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결론을 내리기 위해 마지막 때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포인트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때에 사단은 실제로 갑작스럽게 그리스도의 몸을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속이고 손상하기 위해 많은 다양한 계획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마태복음 24: 24)
이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며 또한 그분의 제자로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사단이 심지어 “택하신 자들”을 대적할 전투를 계획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택하신 자들을 자신의 그물 안에, 함정 안에 가둘 꿈을 꾸고 있습니다.
“택하신 자들”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요?
[물론, 저는 여기서 서로 다른 교단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는 “택함”에 대한 신학적 의미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단지 일반적인 영적 의미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말해서 “택함”이란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 내린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사단은 이곳 저곳의 대부분의 일반적 그리스도인들은 무시하고 택한 자들에게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예수님은 이런 방식으로 절대로 강조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원수는 영적인 여정에서 망설이고 있는 자들은 거의 자신의 그물망에 들어와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들이 사단의 그물 안에 들어가 있지 않다 할지라도 그들은 마지막 때의 다이나믹한 상황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습니다.
마지막 때에 있을 엄청난 실제적인 전쟁은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런 장면에서, 전쟁의 한복판에서 다른 사람들이 싸우고 있을 동안 해안가 가장자리에 머물러 있을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해안가 가장자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구경만 하는 자들은 원수에게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해안가에서 뭘 하고 있을까요? 그들은 기도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단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의 능력을 부순다.” 라고 말하면서 전투를 하고 있을 겁니다. 사단이 군대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면서 이렇게 말할 겁니다.:
“내가 너희에게 매우 비밀스러운걸 말하겠다. 이런 사람들을 대적하지 말아라. 그들이 하는 것들을 방해하지 말아라. 그들은 사실 우리와 우리의 목적을 돕고 있다. 그들이 그런 식의 전투를 하도록 내버려두고 그들이 승리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할 현상들을 좀 보여줘라. 예를 들어 네가 어떤 사람들을 헤치려고 할 때, 잠깐 멈추고 기다려서 그들이 전투에서 이기고 우리를 물리쳤다고 생각하게 만들어라.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이 계속 해안가에 머물러 있게 하면서 그런 일로 그들을 바쁘게 만들게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우리의 모든 에너지는 항상 우리를 최전방에서 대적하는 택한 자들에게 집중해라. 우리는 이 택한 자들을 심각하게 다루어야 한다.”
얼마나 여러분이 전 세계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 특히 목사들이나 지도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접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매번 나쁜 죄나 도덕적 문제 가운데 빠진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 중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이것은 사단이 의도적으로 택하신 자들에게 깊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택하신 자들의 능력을 꺾으면 쉽게 다른 믿는 자들도 혼란 가운데 “나의 지도자가 타락했는데 나는 과연 제대로 서있을 수 있을까?” 라고 두려워하며 말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주요 제목이자 주제인 마지막 때의 부르심과 도전들로 돌아가겠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택하신 자들”을 속이고 함정에 빠트리려는 대결들 가운데 실제적 도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성령님은 단순히 팔짱을 끼고 서서 바라보고 웃으면서 우리에게 “성령 안에서 걸어라. 많이 기도하고 금식해라. 네가 필요할 때 도와주려 기다리고 있다.” 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성령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원수의 계획은 숨겨놓은 계획들을 가지고 택한 자들을 갑자기 공격해서 함정에 빠트리려는 것입니다. 사단이 어떻게 이런 일을 이룰 수 있을까요? 원수는 우리가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그리고 어떻게 그것들에 맞서서 전투에서 이길지 훈련 받은 적이 없고 경험해 보지 못한 무기들로 대적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원수의 다양한 공격들에 어떻게 대처할지 많은 훈련을 이미 받아왔습니다. 교회는 믿음 안에서 어떻게 걸을지,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리고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다른 영적인 무기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원수가 비축해둔 숨은 무기들이 아직 있습니다. 나쁜 죄 가운데 빠져버린 지도자들이 영적 전투에 대해서 훈련 받은 적이 없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사실 영적 전투의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올무에 빠진 걸까요? 실제 그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들과 직면하게 되어 거기에 빠져들고 만 것입니다.
반면에 또한 성령님도 원수를 놀라게 할 이전에 풀어지지 않은 새로운 무기들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의 이 무기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새로운 부르심과 기름 부으심, 그리고 마지막 때를 위해 준비된 특별한 선물들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사 가운데 있는 우리의 소유 중 일부입니다.
성령님은 지금 부르짖고 계십니다. :
“하나님의 교회여 가라! 들어가라! 너의 소유를 취해라. 그래야 너희가 승리할 수 있다. 매우 높고 축복되며 능력으로 가득한 위대한 많은 것들이 너희를 위해 예비되어 있다. 그것들을 취해라!”
그렇다면 질문은… : 우리는 준비되었나요? 이해하고 있습니까? 해안가에 머물러 있을지 아니면 전쟁 한 가운데로 깊이 들어갈지 결정한 적이 있습니까?
결정하는 것, 이것이 핵심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결정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