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삶에 있어 진실되고 진정한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진정한 영적 성장과 삶이 변화되는 은혜를 받기 원한다면,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의 영적인 삶은 피상적이며 진정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끝났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까? 은혜는 공짜가 아닙니까?
물론 이것은 참된 사실입니다: 은혜는 거저 받는 것입니다.
로마서 3:24 에서도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또한 기록되기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8)
말씀에 따르면 은혜는 거저 주시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데 왜 대가가 있는 것입니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중요한 포인트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는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거저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값싼 것이 아니므로 은혜와 교환될 수 있는 대가비용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은혜는 그 값이 측정 될 수 없는 매우 귀중한 것이며, 은혜를 받기위해 지불할 수 있는 대가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그 목숨을 내놓을 지라도, 은혜의 가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죄 많은 인간의 생명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아가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가8 :7). 따라서 은혜의 대가로 제공 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로만 주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제가, 진정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해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피상적인 삶이 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걸까요?
영적인 삶에서 피상적 모습은 우리 시대의 문제이며 심지어 목회자/사역자들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 되었습니다.
왜 목회자들의 영적인 삶이 빈약할까요?
그 이유는 대가를 치르지 않은채 값 싸게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깊은 부분 가운데 은혜가 없습니다. 그들의 삶은 공허하고 궁핍하며 강력한 간증이 없고 삶 가운데 생명이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 사람의 삶 가운데 이 강력한 간증을 지니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선포되고 나타날 수 있을까요?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인데 어떻게 대가가 있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우리의 영적 삶의 기초적인 문제이므로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만 합니다.
은혜는 귀중한 진주와 같습니다. 모든 귀중한 진주는 상자나 안전한 장소에 보관되어야 합니다. 귀중한 보석을 아무데나 부주의하게 보관 한다면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은혜는 매우 소중합니다. 우리는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적절한 장소에 두어야 합니다. 은혜을 위해 우리 내면의 장소를 잘 준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 사람들 안에는 이미 다른 것으로 공간이 채워져 있습니다.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 드러나 빠져 나오고 은혜를 위한 공간으로 준비되서 채워져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 채워진 공간이 은혜가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준비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내면 안을 채우고 있는 이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옛사람입니다: 바로 “나”입니다. 정신(mind) 속에는 각자의 생각, 꿈, 야망, 계획들이 있습니다. 마음(heart) 속에는 나를 좌우로 흔드는 타락한 감정들이 있습니다. 내면에는 자존심, 자아, 타락한 본성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드러나 나오고 그 내면이 은혜로 채워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 여정에서 우리를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상황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그 상황에 무엇을 해야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이해 부족으로 인해 조금 움직이다가는 곧 멈춰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 보는 것을 배울 수만 있다면, 이 목적를 향한 비전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게될 것입니다. 비전의 결여는 혼란과 마비를 일으킵니다. 잠언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잠 29:18).” 목적과 계시의 명확성/분명함은 매우 중요합니다.
목회자(사역자)의 영적 삶에는 올바르고 건전한/견실한 기초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 삶은 단계적으로 움직입니다. 각 단계에서 우리의 상황과 해야 할 일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 삶은 기초들과 여러 층들로 구성된 건물 [1]과도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삶은 집(건물)의 기초도 없고 층도 없는 폐허와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의 삶에는 올바르지 않은 영적 정보나 지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참된 영적 삶으로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우리 내면의 건축물을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 하시는지 알아야하고 거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역/섬김은 우리가 받은 지식과 정보를 단순히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것은 사역이 아닐뿐만 아니라 기독교도 아닙니다. 목회자(사역자)로서 단순히 지식/정보만을 가진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목회자(사역자)는 “생명을 지닌 자들 ”이어야 합니다. 정보/지식은 쉽게 오고 쉽게 갑니다. 그러나 생명을 지닌 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가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는 데에 지불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자/목회자로 준비되기 위해서는 내면의 영적 건물이 필요합니다. 이 내면의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이 대가를 치르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연약하고 가짜의 삶이 됩니다. 우리가 지불해야하는 대가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지불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불가능하며 그렇게 하는것 자체가 은혜를 값싼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우리는 우리 내면 안에 은혜를 받기 위한 장소를 준비해야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내면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영적 부지런함과 대가의 지불이 필요합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은혜 위에 은혜 ” 를 받아야 합니다 (요 1 : 16).
은혜 위에 은혜를 받게 되면 나의 영적 삶은 든든하게 세워지게 됩니다. 그 후에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나에게 은혜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는 내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은혜를 준비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은 그분의 기쁨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받는 것은 나의 역할입니다. 기록된 바: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히 12:15).” 이 말씀은 주시는 은혜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의미입니다. 주시는 은혜를 완전히 받지 못함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은혜의 가치에 합당한 태도와 부지런함을 가지고 은혜를 받기 위한 내면의 장소를 준비하는데 있어 대가를 지불해야할 것입니다.
따라서 값 없이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대가를 지불해야함을 받아 들이므로 우리의 영적 삶이 세워지고 건축되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결과로, 지식과 정보만을 지닌 자가 아니라 생명을 지닌 자가 되어, 주님의 진정한 사역자/목회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역을 위해 준비되는 사람들의 주요 목표는 영적으로 건축되고 세워지며,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아는 것에 있습니다.
